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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이야기/데일리

작던 크던 하나 둘 쌓여 하루의 삶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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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 Jimmy Dean

 

- 새벽 밤 날이 더워서인지 생각이 많아서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새벽 3시가 넘도록 몸만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일어나니 오전 11시다. "하 오늘은 뭔가 망했네" 화이트보드에 써놓았던 To do list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일과를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첫번째는 이불 정리하기다. 뭐 이런 단순한 일과가 포함되어 있냐고..? 하루의 시작을 아주 간단한 이불 정리부터 성공하면 그다음 일들도 점차 수월하지 않을까? 아침부터 머리를 싸매고 힘을 써가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내 모습을 보기 싫다면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일들부터 쌓아가면 될 일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이랬다.

 

- 다음은 방 정리다. 방 안의 상태는 내 마음을 대변한다. 생각이 많고 정신이 없다면 그만큼 내 방의 어지럽힘 정도의 레벨도 올라간다. 방청소의 난이도를 어렵게 만들기 싫다면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정리 정돈해야 한다. 오늘은.. 음.. 난이도가 보통이군.

 

- 빨래는 이미 선수치기를 당했다. 늦은 아침을 맞이한 내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거실 창가 앞에 놓인 빨래건조대다. "이런.. 일을 뺏겼다." 할머니의 손을 거들어 드리려 했건만 오늘 하루 첫 실패다.

 

- 대망의 냉장고 정리를 시작했다. 과거 조리학과 출신답게 요리실력은 녹슬었을지언정 청소와 정리정돈은 내 몸 깊숙히 아직 남아있다. 요리보다 청결을 더 중요시 하던 그 치열한 주방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주마. 정리정돈의 가장 첫 번째 목표는 "버리기"다. 요건 두었다가 다음에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내버려둔 음식들은 어느새 기억의 저 멀리 끝자락에 닿아 잊힌 지 오래다. 이런 녀석들은 냉장고 심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을 확률이 크다. 메인 반찬들에게 자리를 빼앗겼을 테니까 말이다. 아.. 참고로 우리 집 냉장고는 3개다. 하..

 

- 대략적인 큰 일들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개인정비 시간이다. 글을 쓰고보니까 무슨 군대에 다시 온 느낌이다. 갑자기 마음이 쓰리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던 병영일기... 가 아니라 블로그 포스팅을 수정하고 체력단련이... 아니라 헬스장에 다녀왔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병영생활에 가깝구나.

 

- 무난한 하루가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그래 토요일 주말이지만 누구는 일을 하는 나만 쉬는 그런 토요일이다.

 

"하.. 젠장" 남의 상가 앞에 주차를 해놓은 것을 깜빡했다.

 

지금 몇시지..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연락이 와있다. 심장이 뛴다. 생각은 뒤죽박죽으로 정신을 못 차린다. 급하게 차키를 들고 나의 애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역시 가게의 문은 열려 있다. 그리고 내 차는 가게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젠장" 가게 주인분과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다. 내 눈은 요동친다.

 

나는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이번이 첫 번째 실수가 아니었기에... 더욱 심장이 쪼그라든다. 가게 사장님이 말씀이 없으시다. 이게 더 무서웠다. 큰 말씀 없이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그 길로 안전한 곳에 주차를 하고 바로 커피숍으로 달려갔다. 바리스타의 정성과 죄인의 죄송한 마음이 듬뿍 담긴 카페라테 4잔 그리고 디저트 몇 가지.. 요 근래 최고의 이벤트였다. 힘들다.

 

- 저녁에 작은고모네가 왔다. 할머니 건강문제로 찾아오셨다. 오늘도 할머니는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하지만 작은 고모의 방문으로 집안은 금세 화기애애 해졌다. 다행이다. 이런 게 가족이구나 싶다.

 

- 오늘 할 일들 중에서 이제 남은건 책 읽기와 일기 쓰기다. 일기는 지금 쓰고 있구나. 돈 벌러 가는 일 외에 이렇게 하루를 정리하며 글을 쓰는 게 오랜만이다. 생각보다 바쁘게 지냈구나. 하루를 무엇인가에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아주 작은 일과 큰 일의 비중은 상관없다. 단지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작던 크던 하나 둘 쌓여 하루의 삶을 이룬다.

 

그리고 나를 만든다. 그런 평범한 일상들이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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