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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이야기/데일리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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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몸이 무겁다. 어제 서초구에서 수업받는 "스트렝스 트레이닝"의 난이도가 올라간 이유가 가장 크다. 두 번째는 일이 많다. 바빠서 시간을 쪼개며 스케줄을 소화하는 게 피로감을 몰고 온다. 세 번째는 요즘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가화만사성 이랬다고 집안에 불화가 감도니 내 마음도 조금 무거운 거 같다.

 

- 무거운 몸과 마음은 어찌되었든 오늘도 역시 돈을 벌어야 한다. 국가도 가정도 내 마음도 심란한 분위기지만 이런 분위기에 짓눌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럴 때일수록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위기일수록 몰입을 해야 한다.

 

- 아침의 무거운 분위기와 다르게 일터의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좋다. 현장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이다. 심지어 두 곳 모두 에어컨의 바람은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큰 동요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아.. 차 한 가지 빼고 말이다.

 

- 같이 일을 하는 동업자(친구)의 말 한 마디가 나의 마음을 서운하게 한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동업이라는 것이 결코 머리가 둘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이를 본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 같다. 감정이 치솟아 오르지만 축적된 경험의 힘일까 내면을 가꾸려던 그동안의 노력의 결실일까..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질문했다. 왜 화날까? 답은 간단했다. 내가 하는 업무를 인정받지 못하는 거 같아서 그래서 화가 나고 서운했다.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업무를 인정받지 않는다고 내가 화날 이유가 있을까? 업무와 나는 같은 존재인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답은 나온다. 업무 자체가 "나"라는 사람의 본질과 같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의 태도에 말투에 화날 이유도 서운할 필요도 없다. 그제야 친구의 표정, 말투, 목소리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나를 향해 날이 선 게 아니었구나. 그것이 끝이었다.

 

- 오후 5시 30분 "이런.. 금요일인데 차 엄청 막히겠다." 말이 씨가 된다고 2시간이 넘도록 엉덩이는 무감각해져갔다. 책이라도 들고 올 것을 후회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창 밖의 하늘을 본다. 날씨가 좋다.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늦은 오후 지는 태양이 하늘을 그러데이션으로 물들인다. 함께 차에 동승한 인간들은 동시에 "차는 엄청 막히는데, 하늘 참 예쁘네"라고 읇조린다.

 

- 오늘 모르고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 하루 종일 디지털 문명과 동떨어진 세상에 살다가 왔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크게 불편한 것도 없었고, 가끔씩 아날로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랴. 큰 기대는 없었지만 다시 손에 들어온 스마트폰 화면에는 무미건조한 빛들로만 가득했다.

 

출처 -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친척분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친척동생까지 오순도순 모여있었다. 저녁밥을 못 먹었는데 눈앞에 포장된 무엇인가가 보인다. "뭐예요?" "오리고기랑 찰밥이야" 냅다 집어서 바로 비닐봉지를 뜯고 맛있어 보이는 애매한 것들을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허기가 사라지니 그제야 풀린 눈에 힘이 들어갔다. 최근 할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신다. 그래서 주변 친인척 분들이 자주 방문을 하시고 나도 최대한 집안에 신경을 쓰려고 집중한다. 내일은 쉬는 날 할머니의 부재로 쌓인 냉장고의 골칫덩어리들을 세상 밖(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보내주려 한다. 

 

요즘 들어 부쩍 생각이 많아진다. 삶이란 죽음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나 그렇듯 정해져 있다. 우리는 살아간다. 나도 그렇고,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죽음은 낯설다. 두렵고 무서우며 아직 현실로 다가왔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죽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삶은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는 기회인 것을 말이다.

 

점점 무르익어가는 할머니의 삶이라는 열매가 내 삶의 깊이 자리 잡힌 무엇인가를 트이도록 하고 있다. 나는 그 무엇이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다.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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