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감각들에 대해서 인지하고 질문하고 이해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행하려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를 실천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거 같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나는 말 그대로 예민한 성격을 타고난 사람이다. 이 "예민함"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는 거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더) 그렇기에 그런 사회에 삶에 살아온 나조차도 이런 "예민함"이라는 키워드가 "부정적이고 옳지 않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았다.
현재가 아닌 과거에 나에게 "예민함"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은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던 거 같다. 스스로에게 "너는 너무 예민하고 부정적인 사람이야"라고 잣대를 두었던 것이다.
그때의 삶은 정말이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이 "예민함"이라는 녀석이 정말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들이 왔다. 나 스스로를 탐구하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들의 길들을 걸으며 잠시 멈춰 서며 던졌던 질문들 "나는 나를 정말 잘 알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나의 모습을 부정하며 사는 것일까?"
주위를 멤돌기만 하며 바로 보던 나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질문들을 던지며 답을 얻고 또 그 답 속에서 질문을 하고 답을 얻어가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들을 밟게 되었다.
그 과정들 속에서 얻어지는 깨달음들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며 오히려 작고 단순하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답이라는 것은 없으며 단지 나아갈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지나간 과거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오는 "현재"라는 "지금"이라는 그 순간들을 충분히 느끼고 살아가는 삶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예민함"은 현재 "섬세한", "결이 많은", "정서적인" 등과 같은 다양한 의미들의 집합체이자 고정적이 아닌 유동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다양성과 양면성에 나 스스로가 무엇으로 바라볼 것인지 선택할 것인지에 따라서 나를 정의하는 시선 또한 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그 속에서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우리는 '나'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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